2017년은 한국 사극이 보다 현대적인 감성과 메시지를 담아내며, 새로운 흐름을 이어간 한 해였습니다. 역사적 인물과 사건을 바탕으로 하되, 로맨스와 휴먼드라마, 사회 비판적 요소까지 아우르며 폭넓은 서사를 선보였는데요. 특히 역적: 백성을 훔친 도적, 엽기적인 그녀, 군주: 가면의 주인은 2017년을 대표하는 세 편의 사극으로, 각기 다른 색깔과 주제를 통해 시청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이 글에서는 이 세 작품을 중심으로 2017년도 사극의 특징과 매력을 정리해 드립니다.
역적: 백성을 훔친 도적, 홍길동의 재해석
역적: 백성을 훔친 도적은 MBC에서 방영된 30부작 사극으로, 조선 시대 도적 ‘홍길동’의 이야기를 새롭게 재해석한 작품입니다. 전통적으로 의적의 상징으로 그려졌던 홍길동을 단순한 영웅이 아닌, 억압받는 백성의 고통을 끌어안고 함께 싸우는 민중의 대표자로 그려낸 점이 인상 깊습니다.
주인공 홍길동 역은 윤균상이 맡아, 따뜻하면서도 단단한 리더의 모습을 표현했습니다. 특히, 어린 시절 천민의 아들로 태어나 백성으로 살아가는 과정에서 겪는 상처와 분노, 그리고 그것을 이겨내고 의적으로 거듭나는 서사가 감동을 더했습니다. 악역 연산군 역의 김지석 또한 역사 속 실존 인물의 잔혹성과 광기를 설득력 있게 그려내며 극의 긴장감을 더했습니다.
이 드라마는 단순한 액션극이나 복수극이 아닙니다. 조선 사회의 신분제, 차별, 부정부패와 같은 구조적인 문제를 직시하면서도, 거대한 권력 앞에 쓰러지지 않는 ‘사람’의 이야기를 중심에 둡니다. 백성을 위한 리더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정의는 어떻게 실현되는지를 묻는 진지한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OST ‘이방인’ 또한 길동의 정체성과 잘 어우러지며 극의 몰입도를 높였습니다.
역적은 한국 사극이 보여줄 수 있는 깊이 있는 메시지와 감성, 그리고 시대를 초월한 휴먼 스토리를 동시에 갖춘 작품으로, 2017년 가장 완성도 높은 정통 사극 중 하나로 평가받습니다.
엽기적인 그녀: 유쾌한 로맨스 속 시대적 메시지
엽기적인 그녀는 SBS에서 방영된 32부작 퓨전 로맨스 사극으로, 동명의 영화 원작을 조선시대로 옮겨와 새롭게 재탄생시킨 작품입니다. 역사적 사실보다는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 설정이 주를 이루며, 유쾌하고 코믹한 분위기 속에서도 진정성 있는 사랑 이야기와 사회적 비판을 녹여낸 점이 눈에 띕니다.
주연은 주원과 오연서가 맡아, 각각 원칙주의자 관료 ‘견우’와 거침없고 엉뚱한 공주 ‘혜명’ 역을 소화했습니다. 두 배우의 케미는 기존 사극에서 보기 드물 정도로 발랄하고 현대적인 감각을 지녔으며, 전통적인 남녀 역할을 뒤집는 구도는 시청자들에게 신선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특히 혜명 공주는 조선시대 여성이지만 기존의 수동적 이미지에서 벗어나 주체적이고 적극적인 모습으로, 사극 속 여성 캐릭터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코믹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암투와 궁중 내 갈등, 백성의 삶 등을 진지하게 다루며 극에 깊이를 더했습니다. 견우는 혜명의 돌발행동 속에서도 인간적인 감정을 찾아가며 점차 변해가고, 혜명은 사랑과 정의 사이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갑니다. 전통과 현대, 남녀의 역할, 사랑과 책임의 경계를 부드럽게 넘나드는 이 작품은 퓨전 사극의 매력을 유감없이 보여준 사례로 남습니다.
군주: 가면의 주인, 물의 독점과 권력의 민낯
군주 – 가면의 주인은 2017년 MBC에서 방영된 40부작 사극으로, 조선시대 가상의 설정 ‘물의 독점’을 소재로 한 사회적 메시지가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권력과 부의 독점, 부패한 세력에 맞선 정의로운 군주의 이야기를 다룬 이 드라마는, 청춘 로맨스와 정치 드라마의 경계를 넘나드는 흥미로운 구성으로 시청자들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주인공 세자 ‘이선’ 역은 유승호가, 그와 대립하며 진짜 ‘가면의 주인’이 되는 또 다른 이선 역은 엘(김명수)이 맡아 극의 중심축을 형성했습니다. 여주인공 한가은 역에는 김소현이 출연하여 두 남자의 복잡한 감정선과 권력의 구조 속에서 중심을 잡아주는 인물로 활약했습니다.
이 작품은 기존 사극과 달리 ‘물’을 국가 통치 수단으로 설정해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독점 자본의 문제를 상징적으로 그려냅니다. 물이라는 일상적인 자원을 통해 국민의 생존권이 어떻게 위협받을 수 있는지를 조명하며, 군주의 역할이 단순한 권위가 아닌 국민의 삶을 지켜야 하는 사명임을 강조합니다.
극 중 이선은 권력과 민심 사이에서 끊임없이 시험받으며 성장해 가며, 또 다른 이선은 출신 배경으로 인해 이용당하고 갈등하는 캐릭터로 입체적으로 그려집니다. 두 인물은 같은 이름을 공유하면서도 전혀 다른 방식으로 권력과 마주하게 되며, 드라마의 철학적 질문을 강화시킵니다. 정치적 서사, 로맨스, 인간 드라마가 조화를 이루며 2017년 사극 중에서도 신선하고 도전적인 작품으로 기억됩니다.
2017년은 한국 사극이 다양한 형식과 주제를 실험하며 더욱 폭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준 해였습니다. 역적은 역사적 인물을 바탕으로 정의와 민중의 목소리를, 엽기적인 그녀는 코미디 속에서 주체적인 여성상과 사랑을, 군주는 상징적인 소재를 통해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이 세 작품은 각각 장르적 색깔은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사람'과 '권력', '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진정성 있게 풀어냈습니다. 지금 다시 봐도 여전히 울림을 주는 이 사극들을 통해, 사극이 얼마나 다양한 이야기를 품을 수 있는지 다시 느껴보시길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