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을 전후로 한국 사극 드라마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했습니다. 전통 사극의 무게감에 머물지 않고, 장르를 융합하고 인간 내면을 탐색하는 방향으로 확장된 것이죠. 특히 킹덤, 왕이 된 남자, 해치, 나의 나라는 역사적 배경과 픽션, 액션과 정치, 인간성과 권력을 절묘하게 결합하며 각자의 방식으로 사극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이 네 작품의 주요 특징과 매력을 살펴보며, 지금 다시 봐도 손색없는 명품 사극으로 추천드리고자 합니다.
킹덤: 좀비와 조선, 상상력의 정점을 찍다
킹덤은 넷플릭스에서 2019년 1월 첫 선을 보였지만, 제작 및 기획이 2018년에 시작된 글로벌 사극 프로젝트입니다. 이 드라마는 전통적인 조선시대 사극의 무대 위에 ‘좀비’라는 독특한 소재를 얹어, 국내는 물론 전 세계 시청자들에게 엄청난 반향을 일으킨 작품입니다. 역사물과 좀비물이 완벽하게 융합될 수 있다는 걸 증명한 사례로, 한국 콘텐츠의 세계화를 견인한 선구적 작품이기도 합니다.
킹덤은 조선 후기, 권력 암투 속에 미스터리한 역병이 퍼지며 벌어지는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주인공 이창(주지훈)은 병든 왕의 아들이자 세자로, 왕의 죽음을 둘러싼 비밀과 나라를 위협하는 역병을 파헤치기 시작합니다. 이 드라마는 단순히 좀비 액션에 머무르지 않고, 백성의 고통, 탐관오리의 부패, 권력의 독점이라는 주제를 날카롭게 꿰뚫습니다.
화려한 의상과 조선의 풍경, 디테일한 고증은 물론, 좀비의 움직임조차 철저히 연출되어 압도적인 비주얼을 자랑합니다. 김은희 작가의 치밀한 각본과 김성훈 감독의 세련된 연출이 어우러져, 장르물의 진수를 보여줍니다. 시즌 2까지 방영되었으며, 이후도 팬들의 기대가 이어지고 있는 이 작품은 단순한 사극을 넘어 글로벌 퓨전 사극의 기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왕이 된 남자: 한 사람, 두 운명의 정치 심리극
왕이 된 남자는 2012년 동명의 영화를 원작으로 한 리메이크 드라마로, tvN에서 2019년 초 방영되었지만 제작은 2018년부터 이루어졌습니다. 여진구가 1인 2역으로 열연한 이 드라마는 ‘광기 어린 왕’과 ‘그를 대신한 광대’라는 극단적 대비를 통해 인간 본성과 권력의 무게를 심도 깊게 탐구합니다.
광기와 불안에 시달리는 조선의 군주 ‘이헌’과, 그와 똑같은 얼굴을 한 평범한 광대 ‘하선’. 이 둘이 자리를 바꾸며 벌어지는 이야기는, 단순한 정치 음모극을 넘어서 인간의 욕망, 책임, 도덕성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하선은 처음에는 왕의 그림자에 불과했지만, 점차 진정한 리더로 성장해 가며 ‘왕이란 누구여야 하는가’에 대한 정의를 다시 씁니다.
특히 여진구의 밀도 높은 연기는 극의 몰입도를 한층 끌어올렸으며, 이세영이 연기한 중전 ‘소운’과의 애틋한 로맨스는 서사의 감정선을 촘촘히 엮는 역할을 했습니다. 영화보다 인물들의 심리를 더 깊이 탐구한 이 드라마는, 사극임에도 불구하고 대중성과 철학성을 모두 잡은 수작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해치와 나의 나라: 왕권을 둘러싼 두 청춘의 선택
해치와 나의 나라는 2019년 초와 하반기에 각각 방영된 정통 사극과 액션 사극으로, 공통적으로 조선 왕권을 배경으로 청춘들의 갈등과 성장을 그립니다. 이 두 작품은 전혀 다른 분위기이지만, ‘왕이 되기 전’ 혹은 ‘나라가 세워지기 전’이라는 격동의 시기를 배경으로 정치와 정의, 우정과 배신의 서사를 풀어냅니다.
해치는 조선 영조의 젊은 시절, 즉 연잉군이 세자 시절 겪었던 궁중 암투와 개혁의 과정을 그린 정치 사극입니다. 정일우가 맡은 주인공은 처음에는 세자 자격조차 없던 인물이지만, 백성의 고통에 귀 기울이고 진정한 왕으로 성장해 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권력의 중심이 아닌, 변방의 인물이 점차 정치의 핵심으로 들어오는 구조는 감정 몰입도를 크게 높입니다.
반면 나의 나라는 조선 건국기를 배경으로, 고려가 무너지고 이방원이 왕이 되는 과정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싸우는 청춘들의 이야기입니다. 양세종, 우도환, 김설현 등이 주연을 맡아 처절하고 격렬한 감정 연기를 펼쳤으며, 장대한 전투신과 함께 진한 우정과 갈등이 중심에 놓여 있습니다. 특히 ‘너의 나라가 아닌, 나의 나라를 지키겠다’는 캐치프레이즈처럼, 시대에 희생되기보다는 스스로의 정의를 따르려는 인물들의 서사는 젊은 세대에 깊은 울림을 줍니다.
2018년을 기점으로 한국 사극은 단순한 역사 재현을 넘어, 다양한 장르와 서사를 품는 ‘진화형 사극’으로 발전했습니다. 킹덤은 사극과 좀비라는 상상력의 결합을, 왕이 된 남자는 1인 2역의 정치 심리극을, 해치는 왕이 되기 전 군주의 고뇌를, 나의 나라는 피와 칼로 얼룩진 청춘들의 선택을 그렸습니다. 이 네 작품은 각각 다른 방향에서 한국 사극의 스펙트럼을 확장시키며, 지금도 많은 시청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고 있습니다. 무겁지 않으면서도 묵직한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 분들께, 이들 사극을 꼭 추천드립니다.